緊急シンポジウム「ラムザイヤー論文をめぐる国際歴史論争」(2021年4月24日 星稜会館)でご紹介したラムザイヤー教授からのメッセージ(日本語)、文字起こしと韓国語訳をご紹介します。
2021年4月24日 緊急シンポジウム「ラムザイヤー論文をめぐる国際歴史論争」(星稜会館)
ハーバード大学ロースクール ジョン・マーク・ラムザイヤー教授からのメッセー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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ラムザイヤーです。宜しくお願いします。
このシンポジウムの企画を立てて下さった国際歴史論戦研究所の方々、なでしこアクションの方々、そしてこのシンポに対して寛大な後援をして下さった産経新聞、そしてお忙しいところに集まって下さった皆様方に心から感謝致します。
正直に言えば、なんと言って良いか、全くわからない程恐縮です。こんな著名な先生方に集まってくださる事は一生夢にもなかった事です。本当に光栄に思っております。
しかし今度の課題は僕でもありませんし、僕の8ページの論文でも無いことは明らかです。単なる一人の教員に対する嫌がらせの問題ではなく、もっと深刻な、重大な問題だと思います。
過去の出来事を誠実に、細かく、包括的に、出来るだけバイアス無しに伝えること、学問の自由を徹底的に守る事が、今日の課題になっていると思います。そしてこの二つの目的を達成するために、僕が小さい役割でも果たす事が出来れば幸いだと思っております。誠実な歴史を伝えるため、学問の自由を守るために、僕にでも役に立てる事がありましたら、出来るだけ頑張りたいと思っております。
この経験を通して何を習ったかと言いますと、次の三つの点が気になりました。
一つは誠実にものを言う事がどれほど重要であるかです。
今日のテーマの問題を解決するための第一歩は過去の現象を誠実に供述する事ですし、まさに当たり前のはずの事ですけど、発表する時、論文とか記事を書く時、誠実に、そして出来るだけバイアス無しにものを言うべきだという事ですし、現在のニュースを報告するんでしたら、出来るだけバイアス無しに報告するべきですし、過去の出来事について挙述する場合も、同じ事が当たり前のはずですけれど、無視されている訳なのですね。
そして今日のテーマに戻りますと、1930年代の朝鮮半島では何が起こったかについて書く場合も誠実に書くべきだという事です。
僕が今度の短い論文を書いたきっかけも、英文の文献、英文の文献を読んで、まさに不正だと思った事が多かったからです。どれを読んでも韓国の反日バイアスがかかってるとか、または、米国学界の人文学科の反日バイアスがかかっている様に読めるものが圧倒的に多かったので、この論文を書く事にしました。
ということで、歴史を書く時に、政治的に都合が良いからこれを書こうとか、学界の流行に沿ったものを書きたいのでこれを書こうと思って書く人があまりにも多くいるから、この状態になってしまったと思います。
この経験を通じて習った第二の点は、学問の自由がどれほど重要なのかです。
誠実な研究を行うためにはどんなに政治的に不都合な論文であっても発表できる事が「基礎」になります。
結局、米国の学界では少なくてもこれ位は当たり前の事だとずっと思っていましたけど、結構間違っていましたね。
今度の論文に関する反発の猛烈さにビックリしました。ある程度の反発がある事はもちろん覚悟していましたけれども、こんなに激しいものになるとは全く予想していませんでした。
今回の批判者にとって重要な事は、強制連行説とか性奴隷説に対する反対説が絶対英語の文献に現れたらいけないという事らしいです。少なくてもこの二つの点に関しては学者の間では異論が、異説、異議が全く無い。学者の意見は一統していると伝えたいらしいです。
学界内の意見が完全に一致しているという幻影を守るためにこそ、この反発が起こっていて、そのためには今度の僕の論文、8ページの論文が撤回される事が彼らにとっては重要なのらしいです。
これほどスターリン主義の手段は有り難く、めったにみるもじゃないです。でも結構、強制連行説とか性奴隷説に反対する論文が英語の文献に現れない限り、この説に反対する事はホロコーストを否認する事に変わらないと彼らが言える訳です。
でも、それにしても今回の若い助教授たちのやり方を見て絶望しました。学問の自由を全く無視にして学者としての「暗殺未遂」みたいな行為をとって、それを誇りに思ってるとしか思えない事を言っているのですね。
一応、いろんな意見を持つ学者が論文、または学界の発表を通して批判し合う事が学問を推進させるという基礎的な原理が無視されていて、まさに1960年代の学生運動の悲痛な「寛容性の無しの雰囲気」になって、若い学者の中にはなっている感じです。
そして僕、この経験を通して習った最後の点は、友達がどれほど重要なのかということです。
この非難は僕に友達がいなければ絶対生き残る事が出来なかったものだと思います。米国の友人、日本の友人、彼らの励ましがなんと言っても不可欠でした。
信じてくれる友達、安心させてくれる友達。「あんたはインターネットで言われているほどくだらない人間じゃないよ」と、何回も何回も繰り返して言ってくれる友達に僕が頼りました。
猛烈な批判に当たり始めると、どうしても孤立な感じがしてきて、自分に対して疑問を抱き始めるのですし、それこそが批判者の狙いですよね。疑問を持ち始めさせて、最終的には崩して、それこそ中国の文化革命の手段でした。そういう目に遭わないためには、どうしても友人が不可欠であると僕は感心しました。
この災難が始まった直後、「こんな時には人間について色んな事を習うよ」と言ってくれた友達の一人がいましたけど、まさにその通りです。ただ悔しい事には、知りたくなかった事も習ってしまう事ですね。
という事で、今日僕が言いたい事は最も当たり前で、英語では「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です。「人生にとって本当に必要なものは全て幼稚園で学んだ」ということです。
「ハサミを持ちながら走っちゃいけない」という事もありますし、「正直に真実のことを言う」、現在の事でもそうですし、過去の事についても正直なことを真実なことを言う。他人の言いたい事を聞いてあげる、聞きたくない事も冷静に聞いてあげる。そして友達は絶対裏切らない、という事です。
この素晴らしいシンポジウムを開いて下さった国際歴史論戦研究所の皆様、なでしこアクションの皆様、後援して下さった産経新聞の方々、お忙しい中に来て下さった著名な先生方、そして皆様方に厚くお礼を申し上げたいと思います。
以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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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訳
※ “학자에 대한 ‘암살미수’ 행위를 자랑으로 여겨”…램자이어 교수 첫 입장문 전문(全文) から転載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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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 〈램자이어 논문을 둘러싼 국제역사논쟁〉에서 발표…펜앤 단독 전문 번역·공개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램자이어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심포지움을 기획해 주신 국제역사논전연구소의 여러분, 나데시코액션의 여러분, 이번 심포지지움 개최에 관대히 후원해 주신 산케이신문, 그리고 바쁜 와중에 모여 주신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말하면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전혀 모를 정도로 황망합니다. 이렇게 저명한 선생님들께서 모여 주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단한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과제는 저도 아니고, 제가 쓴 8페이지짜리 논문도 아님은 명확합니다. 단순히 한 사람의 교원에 대한 괴롭힘의 문제도 아니며, 그보다 더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성실하고 꼼꼼히, 포괄적이면서도 가능한 편향됨 없이 전하는 것, 학문의 자유를 철저히 지키는 일이 오늘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제가 작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다행으로 여깁니다. 역사를 성실히 전하기 위해,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가능한 열심히 해 보고자 합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느냐고 한다면, 다음 세 가지 사실을 들겠습니다.
첫 번째는 ‘무엇인가를 성실히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입니다.
오늘 주제에서 다루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과거의 현상을 기술하는 것이며,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만, 무엇인가를 발표할 때나 논문이나 기사를 쓸 때, 가능한 치우침 없이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며, 현재의 뉴스를 보고할 대에는 가능한 편향됨 없이 보고하는 것이고,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술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당연한 일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로 돌아가 보면, 1930년대의 조선반도(한반도)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성실히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발표한 짧은 논문을 쓰게 된 계기도, 영어로 된 문헌을 읽고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읽더라도 한국의 ‘반일(反日) 편향’이 반영돼 있다든지, 또는 미국 인문과학 학계의 ‘반일 편향’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읽히는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이번 논문을 쓰게 됐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서술할 때,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이것은 쓰고 다른 것은 쓰지 않는다든지, 학계의 유행을 좇아 쓰고 싶은 대로 쓴다든지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상태가 돼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두 번째는 ‘학문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입니다.
성실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정치적으로 불리한 논문이라고 하더라도 발표할 수 있는 것이 ‘기초’가 됩니다. 결국 미국 학계에서는 적어도 이 정도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태껏 여겨 왔습니다만,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이번 논문에 관한 맹렬한 반발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정도 반발은 있을 것이라고, 각오는 물론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격렬한 것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논문에 대한 비판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강제연행설’이라든지 ‘성(性)노예설’을 반박하는 설(說)이 영어로 된 문헌으로 나타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적어도 이 두 가지 점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론(異論)이나 이설(異說)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학자들의 의견이 한 가지로 통일돼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학계 내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해 있다는 환상을 지키기 위해서 그처럼 맹렬한 반발이 있었던 것이고, 그 때문에 이번에 제가 발표한 8페이지짜리 논문이 철회되는 일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같은 스탈린주의적 수단은 존재하기 어렵고, 좀체 볼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강제연행설’이라든지 ‘성(性)노예설’을 반박하는 논문이 영어 문헌에 나타나지 않는 한, 이런 설들에 반대하는 일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일과 같은 것이라고 그들은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젊은 조교수들이 보여준 행동들을 보고 저는 절망했습니다. 학문의 자유를 완전히 무시하고 학자에 대한 ‘암살미수’와 같은 행위를 하고, 또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발언들을 한 것입니다.
우선, 다양한 의견을 가진 학자들이 논문, 또는 학계 발표를 통해 서로 비판하는 것이 학문을 진전시킨다는 기초적인 원리가 무시되고 있으며, 비통하게도, 이는 우리가 지난 1960년대 학생운동에서 본 ‘무관용’을 젊은 학자들이 좇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마지막 사실은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게 쏟아진 비난들은 친구들이 없었다면 절대로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친구들, 일본의 친구들…… 그들의 격려가 매우 필요했습니다. 저를 믿어준 친구들, 안심시켜 준 친구들, “당신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 말해준 친구들에게 저는 기댔습니다. 맹렬한 비판이 시작되면, 어찌 됐든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마련이며, 자신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비판자들이 노리는 바입니다. 의문을 갖게 해서 마지막으로는 붕괴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문화대혁명 때 중국 공산당이 취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런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친구들이 매우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재난이 시작된 직후 “이런 때에는 인간에 대해 여러 가지들을 배우게 된다”고 말해 준 친구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일은, 알고 싶지 않은 것도 배우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만…… 영어에는 “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번역하자면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것들은 전부 유치원에서 배운다”는 말입니다. “가위를 들고 뛰어서는 안 된다”라든지 “정직하게 진실을 말한다”라든지. 현재의 일도 그렇지만 과거의 일도 과거의 일에 대해서도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 “듣고 싶지 않은 사실도 냉정하게 들어주는 것”. 그리고 “친구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것” 등 말이죠.
이번 심포지움을 열어 주신 국제역사논전연구소의 여러분, 나데시코액션의 여러분, 심포지움을 후원해 주신 산케이신문의 여러분들, 바쁜 와중에 심포지움에 참석해 주신 저명한 선생님들, 그리고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존 마크 램자이어(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 / 번역=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